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학림 사건 (문단 편집) == 사건의 여파 == [[이태복]][* [[국민의 정부]]에서 [[보건복지부]] 장관을 지낸 인물이다.] 등 24명이 전국민주학생연맹과 전국민주노동자연맹을 결성[* 실제로는 결성 준비 단계였다. 일단 이태복의 전민학련과 전민노력 조직 시도는 한국 민주화운동사에서 최초의 조직적인 노동자-학생 연대 시도였다. 그리고 지금까지 노학연대는 운동진영의 기본이 된다. ]한 혐의로 강제 연행되었고 불법 구금과 [[변호사]] 및 가족의 접견 차단, [[고문|물고문과 전기고문]], 여성 피의자에 대한 [[강간]] 위협 등의 [[가혹행위]]로 자백을 받아내는 등의 불법행위가 자행되었다. 이와 같은 사실은 법정에서 폭로되었으나 재판부는 이를 배척해 유죄를 인정하고 [[국가보안법]] 위반 혐의로 이태복에게 [[무기징역]], 이선근에게 7년, 박문식에게 5년 등을 무더기로 선고했고 1982년 판결이 최종 확정되었다. 이들 중 이태복은 1986년 국제앰네스티에 의해 '세계의 양심수'로 인정받았고 김수환 추기경 등의 탄원으로 1988년 개천절 특사에 따라 [[가석방]]되었다. [[인민혁명당 사건]]이 [[박정희]] 유신 통치기간의 대표적인 [[사법살인]]이었다면 이 사건은 [[하나회|신군부]] 세력의 정권 안정을 위해 날조된 대표적인 [[공안사건]]으로 비교된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